75년 결혼할때 세탁기를 처음 장만했는데 세탁통과 탈수통이 두 개가
따로 있는 미색의 반자동식 세탁기였다.
한옥에서 살때 연탄을 때는 부엌 앞에 놓아 두고 써서
세탁기 밑부분에 녹이 슬고 물이 자주 닿아 삭아서 세탁통이 내려 앉기도 했다.
애들 세명이 하루에 벗어놓은 한무더기의 빨래를 매일 무작으로 해 대니
나름대로 충실하게 15년을 제 역활을 다 해주었다.
그래도 버리지는 않고 갖고 있으면서 탈수만 전용으로 썼었다.
한 겨울에 무거운 옷들을 손으로 빨고 탈수만 했었는데
그나마 탈수마저 안되 수명을 다해버린 고마운 세탁기였다.
원주에서 살았을 때인데 시몬은 이사를 자주 다니니까
가급적이면 이사짐을 늘리지 않게 전자제품이나 물건을 사지 못하게 했다.
한 보따리 겨울 옷빨래를 손으로 빨아 댈려고 해 봐라.
세탁기에 의존만 하는 지금 같아서는 하나도 손으로 빨기 싫은데
그때는 어린애들 옷을 매일 한 보따리를 손으로 빨아 널면 며칠을 두고 말랐다.
평소에 성당으로 걸어 가는 길에 중고 가전제품을 파는 곳을 봐 두었는데
새것을 사기엔 어림없고 내 수중에 있는 돈으로 임시로 쓸것을 사야지 생각했다.
겨울 옷을 손으로 빨려면 너무 힘이 들어 시몬에게 의논도 없이
내 마음대로 5만원을 주고 5.2KG 자동식 중고 세탁기를 샀다.
야단은 맞았지만 반자동을 쓰다가 전자동을 쓰니까 얼마나 편한지 몰랐다.
호스를 꼽아두고 전원에 불이 들어오면 한시간 후에 빨래를 꺼내서 말리면 되었다.
근데 이것도 12년을 쓰니까 요즘 순차적으로 말썽을 부리고 있다.
수도에 연결한 물이 들어 가지도 않고 탈수 코스를 지나가도 배수가 안된다.
햇볕이 좋아서 세탁한 젖은 빨래를 짜지 않고 그냥 널어 두면
반나절 만에 바짝 마르니까 아쉬워도 그런데로 썼다.
동네 아짐들은 자기 같으면 여행가는 돈으로 새 것을 산다고 하는데
나는 써어비스를 받아 볼까 하고 써어비스맨을 불렀더니
버리지 말고 탈수 모터만 14500원에 고쳐서 쓰라고 하면서
알뜰한 주부인 나를 칭찬한다.
난 그 고장이 왜 났는지 안다. 며칠 전에 글을 올리다가 뼈다귀 해장국을 먹으러
가자고 아짐들이 하도 바쁘게 설쳐서 내가 세탁기에 채울 물을 그대로 틀어 놓고 갔다.
자동으로 통에 물이 들어 가지를 않아서 호스를 직접 통에 대고
물이 차게되면 통이 돌때 물을 잠궈야 하는데 깜빡 잊고 그냥 가 버렸다.
한시간 동안 빨래를 하는동안 물이 계속 흘러 들어가서 모터가 고장이 났을 것이다.
난 비싼 뼈다귀탕을 먹은 셈이다.
우리 집에 들어온 모든 가전제품은 세탁기를 비롯해서 모든 것들이
남들이 쓰는 수명보다 곱절로 오래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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